[배민 칼럼] 감염과 면역 그리고 도시 공기(Infection, Immunity and Urban air)

  • 기자명 배민 서울 숭의여고 교사/ 치과의사
  • 입력 2021.12.23 11:46

코로나 사태에 대한 사회적 성찰

프롤로그 – 마스크로 덮힌 세상, 도시인에게 ‘공기’는  


[교육플러스] 언젠가 늦여름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외부 온도는 25도였고 도서관 열람실 온도는 25도였는데, 열람실 창문은 모두 닫혀있고 에어컨이 작동 중이었다. 아직 더운 날씨에 창문을 모두 닫아놓았으니 실내 온도가 올라갔을 터이고 사람들은 에어컨을 돌렸을 것이다.

나는 가까운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공부했는데, 한두 시간쯤 후 내가 모르는 사이 이미 그 창문은 누군가에 의해 닫혀있었다. 사실 이는 그날뿐 아니라 생각해 보면 교사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늘 보는 풍경이기도 하다.

물론 나에게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낯선 풍경이기도 하다.

가령 올 가을에도 교실 창문을 열고자 했던 내 행동은 번번이 학생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겨울이 다가오면서 추위와 미세먼지로 인해, 창문을 열고 싶어도 열수 없게 되어 버렸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최근의 코비드-19 사태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의 건강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공기는 단순한 ‘건강’ 차원을 넘어서, 근대사의 쟁점 중 하나이기도 해서, 19세기 유럽에선 신선한 공기(fresh air)가 사회적 개혁(social reform)을 위한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러한 고전적인 위생 개념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순간적인 편안함을 택하는 오늘날 사회적 다수의 요구 속에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도시의 풍경 속에 지난 해부터 코비드-19 사태는 아예 마스크를 덮고 아예 공기를 자유롭게 들이마실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외부 활동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본 에세이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코비드-19 사태에 관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전제들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제기를 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감염 질환에 관한 근본 논쟁점


코비드-19 방역과 관련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많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현재의 방역 흐름이 과연 효과적인가라는 물음은 논쟁적이라 할 수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점들에 대한 판단에는 건강과 질병, 환경, 면역 등에 관한 기본 철학이 관계 된다.

특히 쟁점이 되고 있는 미생물의 감염 그리고 이에 대한 방역, 두 요소 모두에 대해 (단기적인 불편함으로부터의 보호나 불편함의 제거가 아닌) 장기적인 위험성과 건강 비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요구한다.

가장 근본적인 논점은 코비드-19 바이러스가 그렇게 온 사회 구성원 전체가 생활에 심대한 지장을 받고 (가령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살아야 할 만큼 생명에 치명적인가, 즉 인간의 면역 능력을 벗어나는가 라는 점이다.

실제로 코비드-19와 관련하여 주로 관 주도의 역학적 (감염 경로 차단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그 바이러스 감염이 내과적으로, 면역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주제는 여전히 민감하고 논쟁적인 성격을 띤다. 가령 중환자들을 높은 비율로 상대하게 되는 감염내과 등 대학병원의 임상 교수들은 코비드-19의 임상적 성격을 매우 위급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면역학 등 기초의학이나 동네 개업의들 중에는 이와 다른 의견을 가진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코비드-19 사태와 관련하여 현상에 대한 인식에 혼동을 초래할 수 있는 개념적 모호성이 일차적으로 존재한다. 가령 무증상 감염이란 개념은 현재까지 혼동을 주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개념이다. 2019년 코비드-19 사태 초기에는 열도 없고 본인은 못 느끼는데 폐 조직이 괴사하는 등 거의 암환자가 자신이 모르게 종양 조직을 키운 것 같은 어감으로 쓰였지만, 시간이 가면서는 대부분 언론에서 무증상 감염이라는 단어를 사실상 무증상 보균의 개념으로 쓰게 되었다.

즉 아무런 감염 증상 (발열, 발적, 부종, 통증 등)이 없는데도 코비드-19 검사를 해봤더니 양성으로 판정된 경우 이를 무증상 감염이라고 말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 사용은 매우 논쟁적인 측면을 가진다.

감염은 그리 단순한 현상도, 개념도 아니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단지 몸속에 들어와서 존재한다고 해서 이를 ‘감염(infection)’ 상황이라 하기는 힘들다. 감염은 병원체가 우리 몸에 침투하여 한계점(tipping point)을 넘어 증식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보통 우리 몸의 (치유를 위한) 면역반응의 일환으로 붓고, 열나고, 아프는 등의 염증 증세를 동반하게 된다.

즉 보균과 감염은 어감에서 뿐만 아니라 의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가령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은 환자가 감염이 되어 턱 아래가 퉁퉁 부어 찾아오면 나름 치과 치료의 관점에서는 심각한 상황이다.

급성 감염은 위중한 상황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 감염을 일으킨 세균들은 구강 내 존재하는 정상 세균총에 해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즉 인체의 면역 체계와 관련성이 밀접한 감염 현상에 대하여, 이러한 감염이라는 미묘한 단어가 가지는 무게를 인식하지 못하는 일반 언론에서는 코로나와 관련해서 감염이라는 표현을 경솔하게 써온 측면이 있다.

특히 면역과 감염의 관계는 코비드-19와 같은 호흡기 감염 질환의 본질을 이룬다. 인간의 몸에서 먹을 때와 말할 때에 주로 개방되는 구강이나 식도 등 소화계 기관과 비교해도 기도(air way)와 호흡계 기관은 외부에 24시간 늘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몸에서 가장 열려 있는 기관(open system)이다.

실제로 기도를 통해 외부 환경에 수없이 존재하는 미생물(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이 언제든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체계를 가진 것이 우리 몸의 기본 구조이다. 인간의 몸은 닫힌 계(closed system)가 아니다. 그 결과 수백만 년의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기도 점막은 인간의 신체 그 어떤 부위보다도 면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감염을 미생물이 침투하는 숙주의 면역을 생각하지 않고 침투하는 미생물을 규명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감염 질환에 대해 매우 분절적, 환원론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코비드-19 사태의 논쟁점


현재 코비드-19의 위험도 내지는 병독성에 대해서는 미생물학적, 면역학적 논란이 존재한다.

가령 코비드-19와 독감 바이러스 모두 면역체계가 약해진 기저질환자나 고령자의 몸 안에서는 쉽게 기도를 거쳐 폐까지 (때로는 신속하게) 조직과 장기를, 그리고 혈류를 통해 몸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고위험군이 아닌 이상 대부분 별다른 치료 없이도 완쾌되어 왔다는 점은 코로나와 독감 바이러스가 유사성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가령 코비드-19 바이러스는 상기도부터 폐까지, 아니 몸 전체 조직을 대상으로 하나의 병인으로 진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와 비교해 볼 때 종례의 독감의 경우는 만약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기도에서 폐로 전파되면 폐렴으로 진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는 코비드-19  위험도를 독감이나 폐렴의 경우보다 일정한 정도로 높게 보여줄 수 있는 질병 통계적 착시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코비드-19로 인한 사망자의 경우에서 코비드-19 바이러스가 검출되어도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가 함께 검출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지난해와 올해 많은 경우 코비드-19로 인한 사망으로 진단되었다.

코비드-19의 병독성을 객관적이고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인 사회적 치명률과 관련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의료통계학적 논점이 존재한다. 코비드-19 양성 판정 후 사망한 사람 중에서 코비드-19 바이러스 때문에 사망했다고 엄밀하게 의학적으로 판단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연관성(correlation)과 인과성(causality) 사이에 보다 엄밀한 구분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그것이다.

가령 바이러스 백신 접종 후 사망과 백신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질병 통계에 있어 정확하게, 혹은 매우 보수적으로 인과성을 인정해온 점과 비교해 볼 때 코비드-19 사망과 코비드-19 감염 간의 인과성은 그와 같이 엄밀한 기준이 적용되어 통계가 누적되어 왔다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실제로 코비드-19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고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안 받거나 상관 없이 양성인 상태로 사망했으면 코비드-19로 인한 사망으로 일반적으로 분류된, 즉 엄격한 사인 분석이 이루어 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엄밀하게 사인을 판단하려면 시체 부검을 해서 폐의 조직 검사를 하는 정도가 요구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신 접종 후 사망의 사례에서처럼 사회적으로 철저한 사인 판단을 해야할 유인도 없었으며 그래야 할 압박도 없었다.


코비드-19와 도시의 공기


위에서 거론한 코비드-19와 관련한 다양한 논쟁적 요소들을 고려해 볼 때, 다분히 현재의 상황은 불필요하게 공포가 대중에 확산되어진 결과라고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논점으로서 도시에는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세균보다 인간의 생명에 더욱 치명적인 위험 인자들이 넘쳐난다는 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코비드-19 같은 바이러스가 아예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전혀 불편함이나 위험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욕망일 뿐이다.

가령 길을 가던 한 초등학생 꼬마가 덤프트럭에 치여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어도 무덤덤하게 그 보도 기사는 이내 다른 기사들에 묻혀 지나가고 만다. 아무도 기억하거나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건이 된다. 도시에 살면서 으레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풍경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도로 교통체계의 문제점이 초래한 사건이며 문제점 역시 분명하고도 간단하다. 보행자 우선의 원칙이 교통체계 전반에 걸쳐 결여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는 어떤 의미에서 충분히 제거할 수도 있는 위험 인자를 사회적인 무관심 혹은 더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효율성을 위해 방치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코비드-19 사태 속에서 2년간, 즉 생활화된 ‘공포에 사로잡힌’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그 구성원들은 보다 객관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함께 숨쉬는 ‘공기’, 특히 도시의 대기와 관련하여 모두가 불편해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가령 위에서 얘기한 도시의 높은 교통사고 사망 발생율 외에도 자동차를 몬다는 것은 담배 연기보다 수백 배 나쁜 공기를 도시 대기에 내뿜고 있는 것이며, 설령 전기차를 탄다 해도 아스팔트와 타이어 사이의 마찰로 발생하는 무수한 미세 환경오염 입자들을 대기에 주입시키는 상황을 초래한다.

하지만 아무도 자동차 운행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유류세 상승을 원하는 사람도 없다. 왜냐면 대다수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고 자동차를 못 타고 다니게 만드는 그러한 정책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과 도시는 이러한 위험 인자들을 지금껏 나름의 방식으로 처리해왔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오는 과정에서 문제의 원인을 모두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온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이유로 위험 인자들은 도시인의 삶의 곳곳에 상시 공존한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다수의 단기적 편안함 그리고 효율성을 위해 장기적인 위험성을 방치 혹은 위험성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질병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흔하게 관찰된다.

실제로 감염 질환 자체로 인한 (미생물의 높은 병독성 자체가 사망 주원인이 되는) 사망은 현대 선진국 사회에서는 극히 드물다. 그보다 훨씬 더 사망의 주원인으로 흔한 질병은 바로 혈관계 질환이나 암 등이며 그 심각성에 있어서도 이들은 감염 질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건강 유지’를 떠올릴 때 목표로 삼는 것은 ‘지금’ 감기나 독감 등의 감염 질환에 걸리지 않는 것보다는 ‘나중에’ 노인이 되었을 때 (가뜩이나 약해진 면역체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기저 질환에 걸리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성인병들에 대한 예방법은 (물론 현대 의학적 수준에서 우리가 그 원인을 모두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단순하며 널리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건강하게 먹고, 충분히 자고, 최대한 몸을 많이 움직이는 등 많은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는 건강 지식들이 그것이며,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고자 혹은 면역력을 높이고자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어쩔 수 없이 건강을 상실하게 될 위험이 높다.

분명 의료시설에 대한 높은 접근성과 높은 위생 환경에서 오는 단기적 이익들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물리적 환경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그 주거인들의 건강에 분명 해로운 많은 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가령 서울과 같은 도시들은 점차 그 도시에 살고 있는 개인에게는 ‘바람이 불지 않는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반기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 아니 아예 차단된 채 느낄 수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동차 바깥, 창문 바깥의 공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더 이상 신경 쓰는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

현재의 코비드-19 사태는 지금껏 당연하게 여기며 숨쉬어 온 ‘공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한 가지의 근본적 문제를 한국 사회에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는 건강한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병들어 있다면 건강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도 그에 따라 제한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방역의 일환으로 시행되어온 마스크 강제 착용 정책은 한국 사회에서 여론화되지는 않았지만 ‘바이러스가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한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지기도 한다. 미증유의 팬데믹으로 알려진 상황 속에서 미세먼지는 이미 대중의 관심 저편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연간 미세먼지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호흡기 감염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숫자와 비교해 결코 적지 않다. 가령 이미 2013년에 Lancet의 한 논문에서 그해 PM 2.5수준 미세입자 노출로 인한 중국인 유아 사망자의 수만도 91만6000명으로 계산했었다. 건강하지 않은 공기 속에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바람을 반가워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에필로그- 면역력 있는 도시로의 회복


미세먼지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가의 질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인이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터전, 특히 도시 환경과 도시의 대기가 우리 자신의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건강하게 살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려 왔다는 사실이다. 이 현실의 근본에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사고의 경향성이 지극히 자연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외부 자연 공기가 편안하게 숨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면, 창문이나 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이 바이러스 감염을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자연 바람과 환기에 대한 강조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손소독제와 마스크 사용 등에 비대칭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지배적이었다.

위생은 건강을 위해 존재한다. 중국의 도시들처럼 한국의 도시도 사람들이 자연 바람을 제대로 쐬면서 살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바이러스든 미세먼지든,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개인들은 자신들이 숨쉬는 공기가 더 이상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에 도전 받고 있다.

미세먼지는 매년 심해져 왔지만 차와 도로는 갈수록 더 늘어나고 숲은 사라지고 있으며, 도저히 건강해질 수가 없는 상황으로 도시 환경은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혈당 수치와 칼로리 섭취량만 들여다보며 살고 있다. 보행자의 편의보다 자동차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도로교통 체계, 녹지와 숲의 중요성에 대한 철저한 사회적 무관심, 계단을 대신하여 불필요하게 많이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등 장기적인 건강보다 근시안적 편리를 추구하는 사례들은 도시에서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철학과 문학, 의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염과 면역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우리’는 문제 없다고 믿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언제나 문제는 ‘그들’, 즉 우리 밖에 있는, 우리를 이해해주지 않고 우리의 욕심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외부의 적, 가령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문제라고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결국 한 사회의 건강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가장 큰 책임은 그 사회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위급한 감염 질환인 코비드-19 사태 속에서도 도시인들의 건강을 위한 장기적인 접근에 있어 가장 핵심은 면역력을 살린 도시로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칼럼] 감기가 팬데믹이 된 세상

[칼럼] 감기가 팬데믹이 된 세상

배 민

 승인 2021.11.29 23:47


며칠 전 오미크론이라는 코비드-19 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이가 언론 매체를 타고 대중에 다시 한번 공포를 주입시키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걸려봐야 무증상이거나 자가 완치율이 99%를 넘어가는 바이러스의 변이 현상에 이렇게 공포에 떨어야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걸까?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지만 아무도 의문을 달지 않고 그저 지시하는 데로, 명령하는 데로 마스크를 쓰고 묵묵히 입 닫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한국인들은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개인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왜 한국 사회는 자신의 건강에 관련된 문제인데 이렇게 국가만 쳐다보며 살게 된 것일까?

결국에는 건강에 관한 문제도 철학에 좌우된다. 어느 사회나, 어느 개인이나 그렇다. 현대의학의 성립은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코흐에 의해 확립되어간 세균 병원설을 주된 토대로 하였다. 모든 생명 현상을 세포나 분자 수준으로 분절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코로나와 관련해서 애당초 많은 감염내과 전문의들과 역학(epidemiology) 전문가들의 주장은 지극히 환원론적(reductionist) 현대 의학에 충실하게 바이러스 감염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감염 질환에 대한 미생물학적 이해와 면역학적 이해에 있어서 하나의 큰 문제를 가지는데, 그것은 인간의 생리적, 병리적 현상에 대해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시각, 즉 전체론적(holistic) 시각이 결여 되어 있다. 그 결과 잘해봐야 감염(infection)이라는 하나의 현상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생존과 건강의 유지이지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감기에 걸린다고 건강을 잃는 것은 아니다. 면역이 저하되면 건강을 잃는 것이다.

기저질환자나 노인처럼 면역 기능이 손상되거나 약화된 사람들이 독감이나 폐렴과 같은 호흡기 질환으로 흔히 사망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령 현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멀리 로마 시대에도 겨울철 사망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흡기 감염은 대부분 노인층에 발생했다. 노인과 기저 질환자들은 호흡기 감염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감염 질환으로 치명적인 위급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항존한다. 괜히 고혈압이나 당뇨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에서 먹을 때와 말할 때에 주로 개방되는 식도와 소화계 기관과 비교해서도, 기도(air way)와 호흡계 기관은 외부에 24시간 늘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몸에서 가장 열려 있는 기관(open system)이다. 실제로 기도를 통해 외부 환경에 수없이 존재하는 미생물(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이 언제든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체계를 가진 것이 우리 몸의 기본 구조이다. 인간의 몸은 닫힌 계(closed system)가 아니다.

그 결과 수백만년의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기도 점막은 인간의 신체 그 어떤 부위보다도 면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감염을 미생물이 침투하는 숙주의 면역을 생각하지 않고 침투하는 미생물을 규명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현재 주류 방역 정책은 매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인간의 자연 면역 (natural immunity)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감염 질환에 대해 분절적, 환원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실패와 치명적인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사회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감염 질환에 대한 방역이 건강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압도하는 상황은 매우 근시안적인 정책을 초래한다. 실제로 감염 질환 자체로 인한 (미생물의 높은 병독성 자체가 사망 주원인이 되는) 사망은 현대 선진국 사회에서는 극히 드물다. 그보다 훨씬 더 사망의 주원인으로 흔한 질병은 바로 혈관계 질환이나 암이며 그 심각성에 있어서도 감염 질환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보통 우리가 ‘건강 유지’를 떠올릴 때 목표로 삼는 것은 ‘지금’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노인이 되었을 때 (가뜩이나 약해진 면역체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기저 질환에 걸리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실 그러한 성인병들에 대한 예방법은 (물론 현대 의학적 수준에서 우리가 그 원인을 모두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하다. 건강하게 먹고, 충분히 자고, 최대한 몸을 많이 움직이는 등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이며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19세기 중반 영국 전역에서 출판계의 베스트셀러가 된 책 중 하나는 1859년 출간된 ‘Self-help(자조)’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사무엘 스마일스 (Samuel Smiles: 1812 – 1904)라는 잉글랜드의 의사 출신이었던 저자가 쓴 이 책은 역사적으로도 ‘영국 빅토리아 시대 자유주의의 경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비록 스마일스의 책는 대중 의학 서적은 아니었지만, 18세기부터 전 유럽에서 가장 개인의 자유가 안전하게 보장되었던 나라인 영국에서 의사들 또한 개인의 건강에 대한 자기 책임(self-responsibility for health)을 강조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관점에 선 의학 이론이나 사상이 번성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면역력을 높이려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어쩔 수 없이 건강을 상실하게 될 위험이 높다. 가령 암의 예방을 위해서는 (물리화학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최대한 피하는 것이 중요한데, 스트레스를 가하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어쩔 수 없이 보다 이른 나이에 암에 걸리게 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가령 한국 사회처럼 상호 존중의 시각이 결여된 수직적인 인간관, 억압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주의 정서 등은 사회 구성원 개인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높인다.

물질적 환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보행자의 편의보다 자동차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도로교통 체계, 녹지와 숲의 중요성에 대한 철저한 사회적 무관심, 계단을 대신하여 불필요하게 많이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등 장기적인 건강보다 근시안적 편리를 추구하는 사례들은 도시에서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도대체 우리가 지금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을 써야 할 곳이 어디인가? 고작 감기와 유사한, 기도 점막에 들어왔다가 정상적인 면역 반응에 의해 대부분 사멸되는 코비드-19 바이러스 따위에 걸리면 안된다고 매일 마스크를 쓰고 소독약을 뿌려대며 미생물 혐오자로 살아가고 싶은 것인가?

사람들은 ‘우리’는 문제 없다고 믿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언제나 문제는 ‘그들’, 즉 우리 밖에 있는, 우리를 이해해주지 않고 우리의 욕심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외부의 적, 가령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문제라고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건강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가장 큰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 방역 정책의 근본 문제는 코비드-19 감염은 그저 감기에 지나지 않는다(COVID-19 is just a type of common cold)는 사실을 받이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개인들은 면역력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물질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기 위한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해 말하는 ‘행복 추구권’이나 ‘건강 추구권’이 아닌, 진정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건강을 유지해 나가려면 정치인들 따위에 기댈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각성과 사회적 지성의 향상이 요구된다. 결국 철학 없는 사회는 건강하기 힘들며 행복하기 힘들다. 철학을 모르는 개인이 건강하기 힘들고 행복하기 힘든 것처럼.

칼럼니스트 소개: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전직 치과의사)

[유니샘의 학교 한편 이야기] 또, 교육감 선거 ‘철새의 계절’ 

‘교육감 선거’가 철새처럼 또 찾아왔다. 교육감 선거가 다가오니 시도마다 후보 단일화를 두고 물밑작업이 치열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일화 기구들의 단일화부터가 큰 과업이다. 식상한 되돌이표를 반복하지 말고 ‘교육은 교육자가, 정치는 교육감이’한다면 어떨까?

교육감은 교육을 잘 알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교육현장에만 30년 이상 있어 본 사람의 관점으론 글쎄다. 시장과 ‘러닝메이트’를 하든 임명직으로 하든, 차라리 관료가 교육감이 되어도 무방할 것 같다. 확실한 국가관과 교육관을 장착하고 교육행정에 대해 해박한 사람이 교육감이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교육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되묻고 싶다. 그럼 농림부,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장관은 농부, 어부, 노동자 출신이어야 하는지. 교육부는 백년지대계로 국가의 가장 근간을 세우는 부서라는 점에서 특수하다고도 한다. 그런데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장이 된 일조차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경험 많은 행정가가 ‘일’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어공’ 교육감이 논공행상으로 하부조직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현장경험도 많고 교육에 관한 연구가 깊은 전문가로 교육을 전담할 실무진 중심의 ‘교육전진기지’를 꾸릴 안목과 결단만 있다면 정치인이 교육감이 되어도 좋겠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 했나. 교육은 교육자에게 정치는 교육감에게 맡기면 어떨까. 물론 이는 교육감을 직선제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교육감직선제에 매우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직선제를 고집해야 한다면 제발 공짜가 ‘독(毒)’임을 아는 사람, 자유와 경쟁 그리고 개인의 가치를 아는 사람을 뽑았으면 한다. 이런 사람을 가려 뽑을 수 있다면 뽑아보시던가!

[박석희의 교육직썰] 학교는 전면등교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박석희의 교육직썰] 아픈 시대의 생활지도, 교사가 기억할 두 가지 원칙

[박석희의 교육직썰] 전교생 40명 작은학교 교사들의 지혜로 빚은 코로나시대 운동회

올해 마산초 교육과정은 놀이교육…교사 모두 함께 연구

[교육플러스] 모두가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는 음침하게 수군거리고, 누군가는 부끄러운 듯 중얼거립니다. 큰 소리로 들리는 것은 온통 풍문뿐인데, 풍문만 들으며 살기에 교육은 인간사에 너무 중요한 주제입니다. 어렵지는 않게, 핵심을 알기 쉽게 본질까지 꿰뚫는다는 자세로 여러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겠습니다. <교육플러스>는 박석희 선생님과 함께 풍문과 현학의 시대, 알기 쉬운 직썰로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운동회 참여를 위해 학교 체육관에 모인 아이들.(사진=박석희 교사)

마산초등학교는 전교생 40명의 소규모 학교입니다. 코로나19 감염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전면 온라인 개학으로 전환되는 3단계 거리두기가 발령되지 않는 한, 코로나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전면 등교를 유지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적은 수의 교직원들이 협력해 학교 단위, 학생 단위의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최선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1년 6월 2일자 매일경제 신문에 ‘코로나발 잃어버린 공교육 1년…시골·남학생일수록 학력저하 심각’이란 제하의 기사가 실렸지만, 마산초등학교와 같은 몇몇 작은 학교에서는 소규모 시골학교의 장점과 개성을 살려 위기를 극복하려 머리를 짜냈습니다.

학교 현장이라는 것이 규모를 딱 잘라 일반화하여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획일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선생님들의 역량에 따라 공동체 역량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곳이지만,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노력을 병행하며 등교개학을 지속한 곳들은 학생들이 진도를 못 나가거나, 원격학습으로 학습 감독자 없이 공부하느라 학력에 공백이 생기는 일 없이 코로나 이전처럼 수업 받고 배울 수 있습니다.

학생 수가 워낙 적어, 일정 수준 학생이 필요한 집단 스포츠 등 체육활동을 수행하기는 힘들지만, 학생 한 명 한 명의 수준과 발달 속도에 맞는 개별화된 지도를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 학교라 가능한 특색 있는 학급 운영과 학교 교육과정 개발, 개별화된 학습 지도와 학생들과의 깊은 유대는 전염병이 인류 사회를 거세게 흔든 위기의 시대에서 더욱 빛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1년 5월 4일, 마산초 체육관에서는 운동회가 열렸다.(사진=박석희 교사)

2021년 5월 4일, 마산초 체육관에서는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새로 지은 체육관엔 유치원생부터 1학년에서 6학년에 이르는 전교생을 합쳐 40명을 겨우 넘는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은 잔뜩 기쁘게 부푼 마음을 안고 선생님의 지도를 받습니다.

큰 학교에서는 운동회를 열지 않는 경우도 많고, 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많지만 평소라면 재미있게 참여했을 많은 행사들이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폐지된 상황에 잔뜩 위축된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들은 재밌는 운동회를 열어 선물해주기로 했습니다.

마산초등학교에선 2021학년도 새 학기 교육과정을 준비할 때, 선생님들이 다 같이 놀이교육을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것을 가르치더라도 놀이로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할 때, 학생들의 눈빛부터 달라지고 몰입감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박석희 교사)

막상 놀이를 만들고 준비하려고 해도 막연하고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외부 교원활동을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놀이교육 전문가 선생님과 함께 하는 원격 연수를 준비하고, 선생님들은 나승빈 선생님의 ’전학년 수업놀이2‘라는 책을 구입해 함께 독서 모임을 가지며 학생들이 익히기 어려워하고 수업에 통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 아이들을 북돋울 놀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마산초등학교 운동회는 마산초 선생님들의 놀이 연구의 큰 성과였습니다. 수업 내용과 연관 짓는 한계를 넘어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면 굉장히 즐거울 것 같은 놀이들을 선별해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부담 없이 몸을 움직여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았습니다.

막대기로 컵 쓰러뜨리는 ‘최고의 검술사’ 게임에 참여한 학생.(사진=박석희 교사)

플라스틱 숟가락 위에 장난감 계란을 얹은 채로 조심스럽게 이어달리기를 하는 ‘에그스푼 달리기’부터 판뒤집기, 콩주머니 던지기, 아이디어가 빛났던 ‘최고의 검술사’와 ‘최고의 전사’, 컬링과 풍선 배달부, 고리 던져 넣기, 안전하게 준비된 장애물 달리기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마산초등학교가 작은 놀이공원이라도 된 것처럼 신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콘 위에 풍선 떨어뜨리는 게임 중인 학생.(사진=박석희 교사)

오히려 외부 업체를 부른 운동회보다도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정말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연구하고 공유한 놀이 활동들로 이루어진 운동회가 더 의미 있고 재밌었습니다.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진짜 아이들을 생각하여 정성껏 준비하고 연 운동회였기 때문에 선생님도 학생들도 운동회가 끝난 다음 마음속부터 벅차오르는 깊은 자신감과 보람감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며 많은 이들이 계속되는 방역 상황에 지치고 교육 현장에 대한 다양한 우려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개성을 살려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작은 학교들의 지혜는 학교 교육이 무엇인지,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학습 환경에서 펼쳐질 미래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가능성과 교훈을 작은 학교에서 있었던 운동회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인터뷰] 부산 금성고 조윤희 선생님 “경쟁 없는 교실엔 경쟁력이 없다”

[인터뷰] 부산 금성고 조윤희 선생님 “경쟁 없는 교실엔 경쟁력이 없다”

좌우명 ‘초심을 잃지 말자’ “대한교조, 올교련 활동 등 정년 전까지 후배 선생님들 위해 의미 있는 일 남기고파”

김성훈 기자        2021-05-15 15:30


부산 금성고 조윤희 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1990년에 교직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31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부산 금성고 조윤희 선생님. 남성 아이돌 그룹 2PM 장우영이 댄스 가수를 꿈꿨던 고교 시절, 학교 축제에서 힙합을 함께 췄던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장우영씨가 “스승의 날이면 생각나는 선생님”이라고 해서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장우영-박세영 커플편(2014년 5월 3일 방영)에 출연하기도 했다. 조윤희 선생님은 댄스 가수가 꿈인 제자를 응원하기 위해 40대(代) 중반의 나이에 1년 반가량 힙합학원까지 다녔다.

장우영씨 뿐 아니라 졸업하고 40대 가장이 된 제자들과도 연락을 주고받는 조윤희 선생님.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그에게 진정한 스승상이 무엇인지 물었다. 31년 교직 생활에서 쌓은 제자들과의 추억, 교육 철학, 공교육이 나아갈 방향, 향후 계획 등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 교편을 잡으신지 31년이 지났습니다. 교직의 길을 택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 절망과 슬픔을 준 선생님이 있었어요. 당시에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예민하고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이었거든요. 독서를 좋아해서 청소 시간에 책을 읽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가정 교육이 안 돼서 저런다고 질책하시는 거예요. 그때 많이 울면서 ‘나는 나중에 커서 꼭 좋은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 선생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스승, 좋은 선생님상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님이요. 유효 기간 없이 평생 AS(애프터 서비스)가 이뤄지는 직업이 교사라고 생각해요. AS는 교단을 떠나서도 계속되더라구요.”

– 방금 말씀해 주신 내용을 좋은 선생님상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7~8년 차 교사 시절, 한 여중생이 교실에서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 결혼하고 출산을 했을 때라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렇게 될 때까지 도움을 준 부모나 선생님이 왜 없었을까, 어떤 얘기든지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 그때 이후로 교육 방법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그전에는 엄격하고 아이들이 다가오기 어려웠던 선생님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론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서면서 친근한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했어요.

▲ 조윤희 선생님(오른쪽)과 2PM 장우영. 사진=본인 제공

– 인상 깊은 추억을 나눈 제자들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께요.

“좌천동이라고 가난한 동네에 살던 제자인데, 집에 압류 딱지가 붙었을 정도로 가난한 가정 형편 속에서 공부했어요. 가정 형편 탓인지 오랜 시간 감기가 안 떨어지기에 홍삼을 사다 먹이기도 했는데 이 아이가 가난을 극복하려면 경제를 배우고 경제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꿈을 품은 거예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금 투자전문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면서 부모님 집도 사드렸고, 최근엔 장가도 가서 축하해 주고 왔지요.”

조윤희 선생님은 여러 제자들과의 추억을 전해줬다. 가장 최근에 일이라며 들려준 일화이다.

“2학년 때부터 멘토링 하면서 삼성꿈장학생이 되고 올해 2월에 정시로 한양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제자가 있어요. 얼마 전에 과잠(학과 동기생들이 단체로 입는 겉옷)을 입고 찍은 사진과 함께 ‘제가 선생님 작품이잖아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처음에 만났을 땐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노출돼서 공격적이고 방어기제가 강했던 아이예요. 자격지심이 강하고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자존감이 엄청 높아지고 밝아진 거예요. 너무 기뻤어요.”

선생님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 제자들이 잘 됐을 때라고 밝혔다.

“제 직업이 사람을 키우는 일이잖아요. 제자들이 잘 됐을 때가 가장 기쁘고 뿌듯해요. 학생들이 꿈을 이루고,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내가 해왔던 일들이 틀리지 않았구나’를 확인받는 순간이에요. 공부를 잘하고 사회에서 성공한 친구들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땀 흘려 일하며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친구들을 보면 뿌듯하고 교직 생활의 의미를 발견하게 돼요.”

– 제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열심히 노력한 만큼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 ‘땀 흘리지 않고는 열매가 없다’는 교훈이에요. 내가 해야 할 몫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내 몫을 대신해야만 해요. 자유의 혜택을 누리는 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민주사회 시민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조윤희 선생님이 담임하는 반의 급훈은 이런 그의 교육 철학을 담아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이다.

▲ 조윤희 선생님은 10년 넘게 신문을 이용한 NIE교육, 스피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 사회과 교사로서 한국 근현대사, 호국보훈,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등 역사적·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동료 교사들 중에는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언제나 제 든든한 백은 학생들이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어요. 아이들이 듣고 싶은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전해요. 어렵지 않게 일상의 사례부터 접근해서 자유, 호국보훈, 근현대사, 시장경제 등을 가르쳐요. 10년 넘게 매 수업 시간, 신문을 소재로 3분 스피치 교육을 하고 있어요. 최근 3개월 이내 기사 내용을 소재로 삼는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렵에는 대단했지요.”

–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서 애국심을 갖고, 꿈을 찾고,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게 됐다고 고백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까지 많은 선생님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우선 신뢰 관계부터 쌓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신조가 ‘우리 교실에는 금기가 없다’는 거예요. 어떤 얘기를 해도 안전한 공간이 교실이어야 해요. ‘선생님에게 불만이나 불편한 걸 얘기해도 좋다’, ‘나도 너희들을 믿기에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한다’고 가르쳐요.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애들 얘기도 많이 하거든요. 제가 교사 연수 강의도 하는데 밖에 나가서 아이들에 대한 험담이나 부정적인 정보는 교사들 간에 공유하지 말라고 교육해요. 교사가 다른 교사들의 말만 듣고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거든요. 밖에선 아이들 칭찬만 하라고 가르치고 저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자신들을 믿어준다는 거에 큰 감동을 받아요.”

조윤희 선생님은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선 사실과 상식에 근거해 심도 있는 학습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탈원전’과 관련된 영화를 보고 와서 불안한 것 아니냐고 물어요. 그러면 과학적 사실들을 보여주면서 아이들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맡겨요. ‘일본의 과거사 사과 문제’, ‘위안부 문제’ 등도 수업 시간에 구글링을 같이 하면서 관련 정보를 하나하나 함께 찾아봐요.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상식의 선에서 이해하도록 안내해요. ‘건국’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에게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면서 물어봐요. ‘1919년에 국가가 세워졌는데 그 후에 건국준비위원회는 뭘까?’ 1949년 동아일보에 나온 ‘건국 1주년’ 기사 사진을 보여주면서, 해방 후 선조들은 1948년을 건국 원년으로 삼았음을 알려줘요. 그러면서 ‘그런데 왜 굳이 교과서에선 ‘국가 수립’이라고 안 하고 ‘정부 수립’이라고만 할까, 정치적인 이유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건 선배 세대에게 송구한 일’이라고 가르치지요.”

– 교직 생활 30여 년, 교육 현장 일선에 선 교사로서 체감하시는 변화가 있나요?

“‘교단이 무너졌다.’ ‘아이들이 영악해졌다’ 등 부정적인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세간의 얘기는 뒤로하고요. 자신의 진로에 관심 갖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이 긍정적인 변화예요. 예전에는 사(士)자 붙은 직업을 목표로 삼았는데 진로가 다양해졌어요. 그 점에 있어선 더 현명해지고 똑똑해졌어요. 다만, 입시 제도가 다양화되면서 수능을 안 보는 학생도 많아졌어요. 교사들은 수능을 염두에 두고 공교육을 진행하는데 한 반의 3분의 1 정도만 수능을 치르는 학생이고 수능을 안 보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공부를 안 하거든요. 획일적인 국가 주도의 공교육이 앞으로는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봐요.”

– 대한교조 위원장, 올교련 공동대표도 맡고 계신데 이 활동들 관련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올교련(올바른 교육을 위한 전국 교사연합)이 먼저 만들어졌어요. 인헌고 사태를 보고 교사들은 뭐 했나 부끄러운 생각에 선생님을 모았어요. 회원 중에 20~30대 선생님이 많아요. 대한교조(대한민국교원조합)는 정년퇴임하시는 선생님에 이어 위원장을 맡게 됐어요. 대한교조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교사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조합’이에요. 선생님들이 전문성을 쌓아 수업을 잘 하는 교사가 돼야 하고 그래야 학생과 학부모들도 교사를 신뢰할 수 있어요.”

조윤희 선생님은 “교사가 자기 수업을 공개하고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말을 이어갔다.

“교사 평가 시스템의 보완은 필요하지만 교원 평가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에요. 수업에 대한 평가를 교사들끼리 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 대한교조에는 자문교수님들이 계세요. 교육행정, 교육정책, 역사교육 등 여러 전문 분야 교수님들이 계셔서 자문을 받고 있어요. 교수님들께서 벌써 6000 사례의 수업을 참관하고 평가하면서 쌓은 데이터를 갖고 계세요. 그런 것들을 잘 활용해서 앞으로 선생님들의 수업도 제대로 평가하고 자체 연수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 남은 교직 생활 동안 꿈꾸시는 바가 있다면.

“정년까지 5년 반 정도 남았는데 후배 선생님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가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대한교조도 올교련도 그래서 맡게 된 거고요. 제 교사로서의 좌우명이 ‘초심을 잃지 말자’예요. 몇 달 있으면 ‘수업 연구’라고 새로운 교수법을 개선해서 수업에 적용하는 게 있어요. 저는 5년 주기로 하고 있는데 힘들고 귀찮다고 기피하는 선생님들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동료, 후배 선생님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수업 연구’를 자원해서 하고 있어요. 경쟁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끊임없이 발전해야 경쟁력 있는 학생들을 길러낼 수 있는 거거든요.”

조윤희 선생님은 2020년 8월 지난 교직생활의 철학과 경험을 담은 책 ‘경쟁 없는 교실엔 경쟁력이 없다'(부제: 30년차 사회과 교사의 교실 바로세우기)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조 선생님은 오늘날 한국 교육의 모든 문제는 ‘경쟁’이 아니라 ‘경쟁의 결여’에 있다며, 경쟁의 자유가 살아있고 그 안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를 찾는 ‘진짜 평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

▲ 조윤희 선생님의 책 ‘경쟁 없는 교실엔 경쟁력이 없다’ 표지. 사진=백년동안 제공

[박석희의 교육원정대] ‘진보’의 교육감이기 전에 ‘모두’의 교육감이다

[박석희의 교육원정대] ‘진보’의 교육감이기 전에 ‘모두’의 교육감이다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승인 2021.01.30 17:54
‘권재원 칼럼’을 읽고 교육감을 다시 생각하다
[에듀인뉴스] 교사는 교육 전문가로 교육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배웠지만 그 누구도 교육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육이라는 절대반지를 찾기 위해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 교육원정대를 결성해 모험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박석희 선생님과 함께 떠나보실까요?
교육은 항상 기본에서 시작한다. 진보와 보수 모두 기본을 생각해야 한다.

<에듀인뉴스>에 기초학력 문제를 진보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는 어떤 선생님의 칼럼이 올라왔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14명 교육감이 ‘진보’ 진영에서 나왔고, 지역에서 진보 교육이 이루어진지 10년이 되었는데 새로운 교육의 상이 나오지 못해 안타깝다는 논지의 글이다. (관련기사 참조)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특히 소규모 혁신학교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학교의 학생중심 교육과정을 개발하는데 참여하는 교사로서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도 그 못지않다. 옛 시대의 학력은 새로운 시대의 학력과 다르기 때문에 옛 시대의 학력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는 접근 때문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인류의 역사는 항상 새로운 위기에 대한 도전과 대응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살아가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문제들과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발달과 성장은 결국 보편적인 성격을 가진다.
서구의 전통적인 철학은 시간적, 공간적, 원자적 개별자가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지 보편과 특수의 관계를 치열하게 다뤄왔다.
인류 고전은 언제나 새로운 변화와 문제들과 부딪히는 인간이 시대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인류 지성의 보편성을 지속·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지성과 문명의 전수와 발전을 다루는 교육 역시 다르지 않다. 교육 역시 바꾸어야 할 것 못지않게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혁신은 물론 중요하다.
한계 효용 학파의 조지프 슘페터는 한정된 자원과 무한한 욕구가 부딪히는 속에서 인간이 점점 더 발전하는 세상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것은 기업가의 혁신에 의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부가가치 창출의 개선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교육에서의 혁신은 이런 의미가 아니다. 경제적 이윤과 기업 논리를 섣불리 내세웠을 때 교육 현장에 어떤 폐단이 나타날 수 있는지 선생님들은 목격했다.
진보 교육감과 진보 진영에서 내세운 ‘혁신 교육’이라는 학습 내용·방법·평가·학교 문화 전체에 걸친 종합 패키지는 그동안의 학교 현장에서 문제라고 느껴 온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이었다.
이것은 오히려 지나친 경쟁과 정량적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발상에 반대한다는 측면에서 슘페터가 이야기하는 혁신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혁신이라는 말로 말장난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진보라면 으레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발상과 해석을 창조적으로 해야 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진보와 보수를 나눌 때 진보에게만 귀속되는 미덕도 아닐 뿐더러, 진보 교육감이라면 으레 보수진영과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로도 읽혀 불편하기도 하다.
교육감은 진보 진영만을 대표하는 교육감이 아닐 것이며, 진보 진영에서 내세우는 이념에서 비롯된 교육 정책만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작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며 겪은 우리 교육의 위기는 이념적 차이와 지역적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교육감으로부터 소환해야 하는 것은 진보진영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교육에서 어떤 위기와 위험을 절박하게 느끼고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는지 지역교육 공동체 모두의 리더로서 공감해주고 유효한 대책을 제시해 위기와 재난을 넘어설 것인지, 책임 있는 대표의 모습을 소환해야 한다.
혁신은 때로 발상의 대담한 전복과 해체만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작은 조정과 변화를 통해서라도 슘페터가 말하는 것처럼 더 좋은 결과와 개선을 가져오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학력 격차가 나타나고 학생의 몇몇 그룹에서는 심각한 결손과 발달 지체가 나타났다.
학력 격차를 옛 시대의 학력에서 나타는 격차는 괜찮고, 새로운 21세기 역량 중심의 학력에서 나타나는 격차는 심각하고,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책임 있는 리더가 보여야 할 모습이 아니다.
물론 기초 학력 문제는 가뜩이나 바쁘고 다양한 문제에 부딪히는 선생님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던져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업과 학력 외 교육 본질에서 벗어난 것들을 선생님에게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고 고쳐야 하는 것이지, 기초학력과 학력 격차의 문제를 회피하려 하는 것 또한 현명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행정 중심의 섣부른 접근이 아닌 교육 전문가로서 선생님들의 의견과 능력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시험 결과로 나타나는 학력과 미래 역량은 다르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러나 공부 못하는 아이가 반드시 창의적이고 미래 사회에 적응할 역량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은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진 아이라도 기초능력인 3R(Reading, Writing, Arithmetic)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고 이후의 진학과 진로에 활용하고 사회에서 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줘야 하는 곳이다.
기초적인 어휘도 모르고 모국어 철자도 지키지 못하며 모형화 된 문항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고, 교과서에서 몇 번이고 반복한 회화 표현 하나 비슷하게도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학습 지도에 대한 고민 없이 ‘너는 기초능력이 모두 떨어지지만 엉뚱한 생각을 잘하니까 미래에 잘 적응할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적이지도 않고 무책임할 수도 있다.
무식하게 많은 양을 암기하고 소모적인 경쟁 속에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줄 세워 학생들을 평가하고 그들이 걸을 미래를 제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인지 결손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지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학생들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이분법적인 접근은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지=픽사에비)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학력의 위기와 격차의 위기는 교육 전문가가 아닌 이들의 그릇된 개념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위기로서 진지하게 공감하고 접근해야 한다.
학생들의 학력은 단순히 문제풀이 결과로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력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간단한 문제조차 풀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코로나는 자율적인 학습 태도와 메타 인지를 가지지 못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얼마나 절박하게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위기였다.
이는 중간층의 상실이라는 자극적 뉴스로도 드러났고, 가정환경과 경제적 환경이 불안정한 학생들일수록 인지적 학습뿐만 아니라 학습 태도와 정서와 같은 요소들에서도 큰 감퇴를 겪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들에게 선생님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성장과 발달에 반드시 필요한 절실한 것이다.
교사를 만나 상호작용하고 믿을 만한 어른과의 바람직한 소통으로 지적 성장을 하는 곳은 대부분의 학생에게 결국 학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이들이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채워야 하는 것은 역량과 사회생활의 기반이 되는 3R 능력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옛 시대의 학력이기 때문에 교육 사회 구성원들이 불안감을 느끼더라도 ‘보수진영’ 교육감이나 교육 인력처럼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은 사회를 덮친 심각한 위기에 진영 편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혁신교육이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활동 위주 수업과 미래형(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교육은 분명 대안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생에게 더 절박한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학생은 물론 학교 공동체에 애착을 느끼고 선생님을 따르고 안정감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필요하면 나머지 공부도 해야 하고 훈련도 받아야 한다.
미래 사회는 어쨌든 현재와 다를 거니까 현재에 중요한 것은 미래에 중요하지 않다는 접근은 곤란하다.
진보 교육감이니까 진보 본연의 정의로 돌아가라고 하기 전에 모두의 교육감이므로 교육의 기본을 상기하라고 하고 싶다.
교육은 특수한 환경 속에 보편성을 다루는 문제다. 학부모와 국민들이 혁신 교육과 그 결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면 그것이 구태의연하고 보수적이라고 하기 전에 그동안의 교육이 제공해줬던 것을 왜 제공하지 못하게 됐거나 모자라 보이게 됐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발상을 뒤집고 새롭게 보기 이전에, 무너질 수도 있던 위기 아래에서 다시 우리 교육의 미래를 쌓아나가기 위해 우리 교육의 기본을 생각해야 한다.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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